이 시는 일각과 일각의 어머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각의 어머니의 주민등록상의 이름은 '정숙자'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입양을 갔다가 다시 본가로 오셨단다. 그런데 입양간 곳에서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 '정숙자'라는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일각의 어머니는 성이 '이'씨이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복단'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일각이 일각의 어머니에게 듣고 고심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화 통화를 하면 '이복단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각의 어머니가 일각이 이전에도 '정숙자'여사라고 부를 때마다 왜 '엄마'라고 부르지 이름을 부르냐고 말씀하시길래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다행히도 읽은 바 있어 이 시를 인터넷에서 배려 받아 일각의 어머니에게 읉어 드렸다. 아래의 시를 보면은 이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인식을 하지 않지만 무의식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 동안에 축척된 과거가 모조리 무의식으로 계속 쌓인다. 그래서 이름이 중요하다. 일각의 어머니는 '정숙자'라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험난했다. 일각이 일각의 어머니에게 모든 생애를 들어서 일각의 어머니의 일생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각이 그 고난한 세월은 잊고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을 '이복단 여사'라고 부를 때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로 소환할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이름이 일각에게도 중요했다. 이름이 한자로 단순하지만 뜻이 엄청 깊은 사실을 주역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본래 일각의 주민등록상 이름은 끝 자가 오(五)이다. 주역의 괘명의 위에서 다섯 번째 효가 군위의 자리에 해당한다. 어느날 유튜브에서 도올 주역강해에서 이 사실을 알고 주역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 이름 끝 자의 五는 우리 집안의 역사를 따지고 봐도 도무지 일각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3남 1녀다. 부모님의 자식들의 수는 4이다. 오 남매도 아니고 다섯 번 째 자식도 당연히 없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면 항상 끝 자 五를 '호'라고 부르는 것은 부지기수다. 늘 이 대목이 나를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이름에 회의감이 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올의 주역 강의를 듣고서 그 이유를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회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책상을 앞에 두고 어느 사람이 앉았는데 들어가자 마자 나에게 "장군감이 오셨네."라고 말하더라. 이게 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은 오래 전 일이어서 그 당시에는 가끔 사주쟁이들이 면접관에 입회한다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었다. 일각의 일생을 전부 들으면 아마도 모두 일각이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고 다들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글 발이 올라올 때 도올의 주역 강의를 듣고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름을 생각하는데 '일각'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일각으로 개명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뜻 밖의 상황이 놓여져 있었다. 개명을 하면 어마어마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감히 개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만은 '일각'이라고 부르고 공식적인 곳에서는 그 전 이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에게는 일각으로 개명했다고 하면서 일각으로 부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이름은 중요하다. 너무 서설이 길어 이만 줄여야 겠다.
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