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지니아! KBC 틀어.”
화면 오른쪽 위 구석에 “Next 人사이드 동생과 시진의 세계”라는 문구를 보내오고 동시에 광고가 진행 중이다. “굿네이버스 1800-1725 한 달에 만원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광고가 끝나고 화면이 바뀌었다.
사회자 : 이슈가 된 사람들을 만나 그분들이 오늘에 이르는 여정을 여는 프로그램 人사이드에 김정현입니다. 오늘 만나보게 될 분은 실종된 여동생 때문에 촉망받던 화가의 타이틀을 버리고 인생을 유턴하여 오히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예술가입니다. 오늘의 출연자는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인 곽상순씨입니다. 반갑습니다.
곽상순 : 안녕하세요.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면 자막 : 2019년 세계 보도 사진 콘테스트 자연 부조사진 1위
저서 : <사진을 가방에 넣다> <들고 다니는 여행><붓을 버린 이유>
사회자 : 세계적인 사진작가라서 연륜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꽤 젊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비결이 있나요?
곽상순 : 뭐 비결이라고 말하긴 뭣 한데요, 모든 사진작가들이 그렇듯이 인내력과 모험심이 뒷받침되어야 인상적인 사진 작품이 나오거든요. 어떤 경우는 일주일을 기다리고 찍어도 작품으로 선택받을 수 없게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그 일주일은 거의 노숙자처럼 생활합니다. 저는 그렇게 일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좋은 작품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 프로를 만드는 것은 인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사전 인터뷰에서 여동생 때문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던데, 이것은 무슨 뜻이죠?
곽상순; 저와 세 살 터울인 제 여동생이 네 살이 되던 때 실종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스케치북에 동생의 얼굴을 그리고 또 그리고 수 없이 그렸습니다. 그 그림은 조악했지만, 그때 제 앞길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는 회화를 전공했으니까요. 동생의 실종은 저에게는 숙명이었던 셈이지요.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으니까요.
사회자; 아니 어쩌다가 여동생이 실종되었나요?
곽상순; 당시 저희 가족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살던 때인데요, 저는 학교에 있었고 아버지는 회사에 계셨죠. 저희 집에는 네 살 된 여동생과 어머니만 있었다죠. 어머니는 곤히 잠든 여동생을 보고 케이크를 사러 나가셨답니다. 그날이 제 생일이 이었거든요.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여동생 방을 보시고는 그 아이가 없어서 집안을 살피셨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애가 없었던 겁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도 동생을 찾을 수 없다 하셨지요. 어찌할지 몰라 아버지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말하자 아버지께서 경찰에 신고하셨답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동생은 실종 상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회자; 동생을 찾으려고 여러 시도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곽상순; 저희가 할 수 있던 일은 전부 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국 파출소와 경찰서의 실종 어린이 찾는 게시판에, 그리고 우리 집 주변 곳곳에 동생 찾는 전단지를 붙였지요. 또한 우리 가족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전국의 위탁 보호시설에 문의하여 동생과 같은 어린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제보 전화가 오면 달려가서 확인 하곤 했으나 동생을 찾을 실마리는 단 하나도 건질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신 어머니는 자진하셨지요. 동생 찾기 위하여 지금도 노력 중입니다만 이 자리 오기까지 동생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사회자; 당시 충격이 상당이 컸을 것 같은 데요? 어린 나이에 동생이 실종되고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말입니다.
곽상순; 아! 어떻게 말해야 할 까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낀 것인데, 언어가 감정을 선을 따라가지 못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상태를 비슷하게 정해진 단어로 말하자면, 터널 속을 지나야 고난에서 벗어나는데 출구처럼 보이는 하얗고 작은 점이 희미하게 보여 계속해서 걷는데도 그 하얀 점이 커지질 않는 겁니다. 오랫동안 그 터널에서 헤매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자; 주위 분들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도 성실히 학창시절을 보내셨다고들 하는데 그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인가요?
곽상순; 저는 하루하루가 상실감과 외로움에 지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장례 후 이튼 날부터 직장에 나가시고 퇴근도 일찍 하시어 저를 돌보셨습니다. 그날 이후 술을 좋아 하시던 아버지께서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그렇게라도 하시어 채우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절도는 치자물이 손에 물들듯이 저에게 스며들었지요. 결국 아버지께서 제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회자;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유명대학 회화과를 나와 촉망받던 신인 회화작가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포토그래퍼로 전향했다고 하던데, 무슨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곽상순; 어느 날 제 화실에 남매인 두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다정히 함께 그림을 그리는 그 아이들 때문에 동생을 찾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나의 능력도 발휘하며 동생을 찾을 기회를 갖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매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서로 번갈아 가며 스마트폰으로 찍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을 떠올렸지요. 사진을 찍으려면 많은 시간을 걷고 찾아다녀야 되니까요. 또한 회화나 사진이나 미적 추구는 동일하다는 생각했었죠. 동생의 흔적도 더듬고 미적 추구도 하고 나에겐 포토그래퍼가 적절한 직업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진에 대하여 공부하고 찍으러 다니고 그러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자;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지 않으세요?
곽상순; 처음엔 저도 겸업해 보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먹이를 문 개가 물에 비치는 자신을 보고 물속에 비친 먹이를 먹으려다 물고 있던 먹이마저 물속에 빠뜨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막상 경험해 보니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론 포토그래퍼로서의 삶에 전염했습니다.
사회자; 화면에 사진들이 나올 겁니다. 그 사진들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곽상순; 예! 그러겠습니다.
자료화면; 파란 하늘에는 적운들의 여러 무리가 가득 차 파란 바다 위에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화면 중간에서 시작한 낮은 언덕의 숲이 가로 삼분의 이만큼 오른쪽에 펼쳐져 있다. 왼쪽 역시 낮은 언덕의 숲이 누워있다. 두 숲이 만나는 지점이 겹쳐 계곡의 모양을 이룬다. 사진 중간 아래에 펼쳐진 거울 같은 호수는 언덕의 숲과 하늘이 반사되어 둘 중 어느 것이 실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곽상순; 이 사진은 영국 컴브리아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라이달 워터에서의 풍경의 반사 현상을 캡처한 것입니다.
자료화면; 금문교의 빨간색 주 탑이 사진 한가운데 수직으로 서 있다. 왼쪽 가운에 또 하나의 주 탑이 멀어져 작게 보인다. 두 주 탑을 이은 케이블이 아래로 곡선을 그리며 늘어져 있고 교상을 지지하는 얇은 케이블들이 수십 가닥 씩 수직으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교상 아래에 지지하는 빨간색 철골 구조물 사이로 막 떠오른 태양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퍼져있다. 교상 옆의 전구들은 주황색을 띠며 빛나고 있다. 화면 아래에 작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섬처럼 보이는 착시는 강물은 보이지 않고 연무가 그 위를 따라 낮게 깔린 탓이다. 왼쪽 중앙에서 시작된 낮은 야산은 오른 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며 다리의 구조물과 겹쳤다 걷혔다 한다. 하늘은 짧게 잘려 있으며 검은 회색으로 채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면은 어둡다.
사회자; 이것은 미국에 있는 금문교 같은데요. 맞나요?
곽상순; 예, 맞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베이커비치에서 새벽에 본 금문교를 찍은 것입니다. 이것을 찍느라고 잠을 설쳤습니다.
자료화면; 연이어 십 여 장의 사진이 화면에 뜨고 그 아래에 찍은 장소가 자막으로 처리된다.
사회자; 사진을 보자니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것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발품도 많이 팔았겠습니다.
곽상순; 아마 제가 걸어 다닌 거리를 따지면 지구 두 바퀴 반을 돌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좋은 작품을 찍기 위한 타이밍을 위하여 기다린 시간은 사천삼백 시간이 될 겁니다.
사회자; 그런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려면 많은 경비가 필요할 텐데 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곽상순; 처음엔 회화 작업실 보증금으로 충당하고 뷰포인트를 찾아다닐 때는 거의 배낭여행 수준으로 지냈습니다. 한 마디로 거의 거지꼴이었지요. 만족할 만한 사진이 모이면서 여러 출판사에 내가 촬영한 사진을 보내면서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도 했지요. 현재 계약하고 있는 출판사가 적극적인 후원으로 여행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모든 여행이 힘들었으니 기억에 남지 않는 여행지는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히 기억되는 체험이 있습니까?
곽상순; 물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차로 7시간이 걸리는 알프스산맥 중 톨로미티산으로 가는 여정 중에 오르티세이라는 마을을 들렀었습니다.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한 그 마을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그 마을 청년을 만났습니다. 외국인인 나를 보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말을 걸더라고요. 내가 ‘싸우스 코리안’이라고 말하자 ‘오! 예스, BTS!’라고 말하며 그 마을 곳곳을 다니며 소개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친해졌지요. 그날 BTS 때문에 제가 호강했었습니다.
사회자; 그 마을에는 하루 여정을 풀려고 간 겁니까?
곽상순; 처음엔 잠깐 들르려고 갔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집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하루 묵었지요.
사회자; 그것 전부 입니까?
곽상순; 아! 아닙니다. 물론 그 마을이 풍광도 좋았지만 저녁식사 자리 때문에 인상이 남았습니다.
사회자; 그럼 계속해서 말씀 좀 해주시죠.
곽상순; 초대해서 그의 집으로 갔는데, 젊은 여성이 그 청년과 대화를 나누더니 그녀가 연신 ‘웰컴!’을 연호하더라고요. 그 청년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했는데, 대화를 해보니 두 남녀는 남매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곳에서 농사짓고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때 나는 울컥하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지요. 실종된 동생이 떠올랐거든요. 그때 친절을 베풀어 준 그 남매에게서 우리 남매가 투영되더라고요. 내 동생이 옆에 있다면, 우리도 행복하겠지, 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결국 동생 때문에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사회자; 하나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동생의 자취라도 찾으려면 국내 여행을 먼저 계획했어야 하지 않았나요?
곽상순;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어서 책을 내려고 계획했었지요. 그 책을 내면서 어린 시절 동생의 사진을 마지막 장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던 겁니다. 여동생이나 여동생과 관련된 사람이 그 사진을 보면 연락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모아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호감을 보이는 회사가 없더라고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여행비를 충당하기도 버거웠거든요.
사회자; 혹시 거절당한 이유가 작품성 있는 사진들이 부족해서인가요?
곽상순; 틀에 박혀 너무 단순하다고들 충고하데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사진에 관한 실력이 많이 부족했었더라고요.
사회자; 그래서 어떻게 타개를 하셨습니까?
곽상순; 그때는 동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우리나라 국민이 삶에 여유를 느끼면서 해외여행객이 부쩍 증가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봤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쳤지요. 해외로 눈을 돌렸던 겁니다. 무궁무진한 소제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죠. 해외여행 안내서도 되고 제 작품의 상품성도 노리면서요. 결국 교수님도 보시 듯이 제가 유명해지니 동생 찾을 홍보 기회가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제 계획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자; 해외에서 활동하려면 언어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이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곽상순; 대학 시절 때 여자 친구가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녀와는 전공 수업을 제외하고 거의 붙어 다니다 싶을 정도로 생활했지요. 그녀는 자기와 대화를 할 때는 영어로 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처음에는 더듬던 대화가 몇 주를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 지더라고요. 거의 이 년 이상을 그렇게 했으니 그 덕분으로 영어 회화는 어찌어찌 어려움이 없었는데 현지 언어는 적당히 영어를 섞어 보디랭귀지로 해결했습니다.
사회자; 젊은 나이에 떠오르는 사진작가가 되었는데 현재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곽상순; 만족하는 삶을 산다면 인간이겠습니까? 신이나 부처겠지요. (사회자가 빙그레 웃는다.)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으니까요. 만일 동생을 만난다면 그땐 제게도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요?
사회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곽상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느꼈던 것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비하면 저는 미천한 유기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알았지요. 미미한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자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러려면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이 날 보고 방랑자라고 부르는데 저는 그 별칭이 좋더라고요. 저는 늙어서도 이 길 저 길 누비고 다니다 길에서 죽으리라 다짐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다시 책으로 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사회자; 이 자리를 빛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동생도 꼭 재회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곽상순;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회자; 시청자 여러분!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곽상순씨의 동생 사진을 보내드리면서 마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화면; 방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여자 어린아이 사진.
머리는 단발이고 자주색 반바지와 빨간색 꽃무늬 그려진 노란색 반소매 옷을 입고 서 있다.
자막; 실종 아이 이름 : 곽경화
광고가 화면이 흐르자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방송 시작되기 전에 광고에 나오던 어린이 재단의 전화번호가 담긴 메모지를 보고 번호를 눌러댔다. “저희 어린이 재단에 정기후원자가 돼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듣고 전화를 끊었다. 내 여동생이 어린 시절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동생과 같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캠페인에 참여했다. 동생이 살아 있기는 한 걸까? 불행보다 더 질긴 것이 사람의 목숨이 아니던가. 내가 다섯 살 때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고, 그때 박승현씨는 그 붕괴 사고로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고립 상태에서도 17일 만에 구조되었다고 내가 철이 들어 인터넷 기사로 보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인생이란 절벽에서 자란 나무에 의지하는 삶과 같다. 위쪽으론 벌통에서 흐르는 꿀을 달콤하게 받아먹고 한 손으론 나무줄기를 잡고 있어 아래로는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한 덩어리로 뭉쳐있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것도 쉽진 않다. 나와 동생은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쉬고 있으며 언젠간 인연이 닿으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져본다. 스마트폰 벨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방송의 위력이 대단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5년 이상이 된 친구들도 현재로 데려왔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연락처에 기록되지 않은 일반 전화번호다. 기분이 묘해져 스마트폰 액정에 뜬 ‘통화’자를 길게 밀었다.
“안녕하세요?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순애입니다. 곽상순씨죠?” “예! 그런데요. 무슨 일입니까?” “
“방금 전에 동생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제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예의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그런 제보전화는 수 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큰둥한 답변을 한 것이다.
“그 제보자가 여동생을 데리고 있던 여자가 살던 집 주소를 알려 주더라고요.”
“그래서 실마리라도 찾았습니까?”
“그 집 주소의 근처 초등학교에서 동생의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저의 실종아동 찾기 센터 장기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로 확인한 결과 동생 얼굴과 비슷하더군요.”
“그 사진 저에게도 보내주시겠습니까?”
갑자기 머리카락 뿐 만아니라 온 몸의 피부의 모공이란 모공이 전부 삐쭉였다.
“예, 그러죠.”
금방 메시지가 하나가 왔다. 메시지를 터치하니 증명사진 한 장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터치하여 보았다.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사진을 확대했다 축소했다 여러 번 반복해 보니 실종 당시 동생보다 나이는 서너 살은 더 먹었어도 거의 동생임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을 찾기 위해서 동생의 얼굴을 얼마나 보았던가?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동생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주소지를 확인해 보니 이사를 했더군요. 그런데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더 이상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은 살아있다는 거네요.”
“더 조사해 봐야 알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죠. 용의자가 파악 되었으니 진행 중인 사건으로 정식 수사하기로 했습니다.”
“동생과 용의자가 특정되었으니 동생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네요?”
“제보자가 제보한 주소 주변을 탐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겠군요.”
“저희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진전이 있지 않겠습니까? 좀 기다려 보시죠.”
“아! 예. 그럼 애써 주세요.”
“그럼, 수사가 진척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의 연락처에 그 전화번호를 ‘경찰’이라고 저장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실종아동찾기센터에 아버지의 DNA와 동생의 나이와 이름과 신체적 특징 그리고 주소와 연락처를 남겼다. 청진기로 혈압을 잴 때 최고혈압에 도달하면 쿵쾅 쿵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지금 내 심장이 그렇게 나댄다. 빨리 기쁜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
“내 걱정은 말아라. 밥은 먹고 다니는 거냐?”
“그럼요. 제가 어린 앤가요. 아버지 기쁜 소식이 있어 이렇게 연락드렸어요.”
“무슨 일인데 그러냐?”
“동생의 소재지를 알고 있다는 제보자가 나타났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그게 정말이냐?”
“예, 동생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특정이 되었으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서 탐문수사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진행 중인 사건이라 정식수사를 개시했답니다.”
“정말 잘됐구나. 실마리를 찾았다니 사막에서 잃어버린 보석을 보는 것 같구나.”
“저도 기뻐요, 아버지.”
“그래 이거야 말로 신이 정한 계시가 아니겠니. 그 오랜 세월 이룰 수 없었던 일인데 말이다.”
“아버지 흥분 가라앉으세요. 그러다 동생을 만나면 쓰러지시겠어요.”
“그래 기다려 보자. 어찌하든 예삿일은 아니다.”
“아버지,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잖아요?”
“그렇지.”
“저는 성묘를 가던지 아니면 간단히 제사를 지내던지 했으면 하는데요.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좋으시겠어요?”
“음식을 사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성의 없어 보이고 차라리 난 성묘를 가는 것이 낳지 싶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제가 내일 일찍 갈게요.”
“그래라. 그럼 내일 보자.”
“예, 아버지. 편히 일 보세요.”
대학을 졸업한 후론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보니 오히려 아버지와 통화를 자주하게 되었다. 같이 살면 안부가 확인이 되지만 떨어져 살면 궁금증을 유발하니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쇳덩이와 돌덩이에 불과한 이 스마트폰이 나를 효자로 만든다.
다시 탁자에 놓인 휴대폰에서 이젠 알 수 없는 휴대폰 번호가 액정 가운데 떴다. 통화버튼을 검지로 누르고 액정 밖으로 길게 직선을 그었다. 그러자 낯선 듯 익숙한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곽상순씨 휴대폰인가요?”
“예, 제가 곽상순입니다만.”
“오빠, 나 혜경이야.”
순간 나는 석고로 온몸을 깁스한 듯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뇌에서는 놀라움에서 시작하여 반가움이 움텄고 궁금함이 똬리를 틀었으며 배신감을 배경으로 분노를 쏟아냈다. 추상명사의 개념들로 가득 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기에 눈만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그 전화기가 혜경이의 얼굴이라도 된 냥. 나의 침묵에 그녀도 당황했는지 말이 없었다. 장고 끝에 악 수를 둔다던가?
“너, 왜 그랬었어?”
다짜고짜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 말을 해놓고 금방 후회했다. 이것이 아닌데.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세상이 평화를 얻은 듯하다고, 그래서 메시아가 강림한 것이라고 말할 것을. 그녀도 침묵을 깨고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왜 그러다니. 도대체 내가 뭘 어쩠다고 그래.”
“너 아무 말 없이 이민 갔잖아.”
“무슨 소리야. 내 마지막 편지에 답장하지 않은 사람이 누군데 그래.”
“전화번호를 보니 국내인 것 같은데, 그러냐?”
“나 지금 서울에 있어.”
“전화로 나눌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만나서 이야기 하자.”
“좋아, 오빠.”
“오늘 만날 수 있어.”
“응.”
“그래, 그럼 S호텔에서 만날까? 은평구에 있는데.”
“그렇게 해.”
“내가 문자로 주소를 보낼게. S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보자.”
“알았어, 오빠.”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로 S호텔의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내가 혜경을 처음 본 것은 꽃들이 서로 자기들이 화려하다고 뽐내는 계절에 대학교 봉사동아리에서였다. 그녀는 새내기였고 나는 삼학년이었다. 동아리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 올 때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 솔로에서 탈출할 마지막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내가 너무 그녀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그녀는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는 수컷들의 동공으로 스캔 당할 만한 미모를 갖추었었다. 수려한 몸매는 그녀를 더 도드라지게 했다. 수수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는 얼굴이 나를 헛갈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보다도 극적인 반전이 있을까 싶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등장한 때는 내가 새내기 시절 멋진 로맨스영화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자신했지만, 그 많던 미팅에서 짝을 못 찾고 학년을 오를 때마다 미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따분한 대학생활에 활력을 잃을 때였다. 그녀는 봉사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고 인사와 더불어 나긋나긋하게 용건을 밝혔다. 나는 제 빨리 그녀를 회의 탁자 안에 있는 의자를 빼내 앉기를 권유했다. 지원서와 볼펜을 내밀면서 작성하면서 의문이 드는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줄 것을 첨언했다. 그녀는 지원서를 쓰면서 가끔씩 긴 머리카락이 얼굴로 흘러내리자 볼펜 쥔 오른손으로 쓸어 올렸다. 지원서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지원서는 동아리 및 대외활동 란과 자기소개 및 지원동기 란 그리고 리더십 경험과 단체 활동 경험 란으로 구성되어 있어 까다로웠는데 대부분의 동아리 가입은 취업을 할 때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한 가지 정도는 물어 올 줄 알았다. 지원서를 쓰는 내내 나는 그 점에만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그녀는 질문 한 번 없이 지원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내게 호의를 베풀만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면접이 있으니 꼭 참석해주세요. 면접은 신청서 심사 후 문자로 갈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받아든 지원서에서 제 빨리 이름 란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더 내 인상을 각인 시키려 허리를 그녀 쪽으로 굽히면서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저는 이혜경씨가 우리 동아리에 합류하길 바랍니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일단 우리 동아리에 들어 와야 내가 어찌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녀가 동아리방을 나간 뒤 지원서를 읽어 보았다. 그녀가 궁금해 하던 다른 회원들도 같이 보았다. 지원 동기는, “봉사는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양심의 가책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이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자기소개서에는 “두 남녀가 만나 날 이 세상에 올려놓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쳐서 이곳에 오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잉크가 메말라있었다. 우리 멤버들 모두 어이없어 하며 이런 학생이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면 물이 흐려질 것이라고 수런거렸다. 또 어떤 학생은 스펙을 쌓으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신청서가 성의 없어 보이긴 했으나 진실성은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한 가지 사실로 인간성을 단정지울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외형이 모두 다르듯이 각자의 서로 다른 인생관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녀의 지원동기와 자기 소개서가 의외로 창의적이라고 퍼뜩 뇌리를 지나쳐 갔다. 뿐만 아니라 짧은 문장으로 이보다 더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녀는 정말 자기소개서처럼 아무런 의지 없이 살았을까? 그녀를 다시 만나 그 궁금증들을 해소하고 싶었고 더불어 아름다운 자태를 꼭 두 눈에 다시 담고도 싶었다. 이렇게 까지 그녀를 두둔하는 것을 보니 내가 제대로 그녀에게 반했던 모양이었다. 이 그림대로 하자면 여론을 돌려 놔야 했다. 그녀를 부정하는 멤버들 모두에게 억지를 부려 궤변론으로 풀어내야 했다. 수런거리는 그들을 잠재울 요량으로 큰 소리로 “잠간만!”이라고 천둥소리를 입에 꾸어다 놓았다. 동아리방은 일순 고요해졌다.
“우리들 중에서 그 학생보다 양심대로 또한 자기 의지대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 봐!”
A후배가 손을 들었다.
“너는 너의 의지대로 철학과 간 거 맞아. 네 실력으론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없으니 우선 우리 대학에 들어 오고보자고 하여 지원한 건 아니고?”
B동기가 손을 들었다.
“너는 의지대로 국문학과 입학하고 취직하기 어려우니까 학과공부 내팽겨 쳐놓고 영어공부 하잖아!”
“내가 보기에는 자기소개서를 쓴 이 새내기가 어쩌면 우리보다 솔직하고 덜 가식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단정 짓지 말고 면접도 있으니 그 때 다시 확인해보자고.”
다들 부풀던 거품이 실바람이 불어오자 사그라지는 분위기였다.
며칠 뒤 면접이 있었고 그 여학생은 다행히 참석했다.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근심으로 두통을 앓았던 며칠을 보상이라도 받듯 다시 반가움이 부풀어 올랐다. 동아리 가입하는 것이 너무 까다로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지원동기와 자기소개서를 무성의하게 서술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묻기도 전에 우리 모두는 그녀의 용모에 기가 질렸다. 그녀가 처음 온 그 날과는 달리 옅은 화장을 했는데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은 것 같은 맨 얼굴은 개구리의 살갗처럼 번들번들하고 입술은 립스틱을 칠하지 않아도 얇고 빨겠는 데 살짝 진빨강을 덧칠했다. 머리엔 빨간색 털실로 짠 베레모를 썼는데 입술과 짝을 이루어 강렬한 인상을 뿜어댔고 무릎이 들어난 검정색 치마를 입고 빨간색 블라우스 위에 하얀색 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갈색 스타킹에 상아색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빨간색의 매치로 큰 눈은 송아지 눈 같았고 코는 더 우뚝해 보였다. 많은 학생이 모여 있는데 사위가 고요하다보니 그 침묵에 그녀가 더 놀란 것 같았다. 입을 열려는 멤버들은 아무도 없었다. 풀꽃같이 일던 원성은 시든 낙엽이 되었다. 뻣뻣이 나무처럼 서 있는 그녀를 누구 하나 의자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든 면접은 진행해야 하니 그나마 연륜이 묻어 있는 C선배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무성의한 지원동기와 자기소개서를 쓴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지원 동기는 솔직한 의사표명이었고, 자기소개서는 자기를 많은 사람에게 프라이버시를 공개하는 것이고 그로인하여 남이 자기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자기소개서는 객관화를 넘어서 재치가 있어 보인다. 봉사하자는 데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이유에 대하여 나도 의문을 가진 터였다. 입시를 치르는 것도 아니고 취업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돕겠다는 데 이렇게 까칠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동아리는 봉사하러 가는 날 특별한 이유 없이 세 번 이상 참가하지 않는 학생에게 회원 자격을 박탈하는 동아리 운영규칙이 있다. 따라서 형식적인 동아리 가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취업에 필요하니 스펙용이 아닌가를 다들 걱정하는데 우리 멤버 중에서 그것을 허리 옆에 묶어 놓지 않은 학생이 있을까? 이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신입회원들을 뽑을 때 아예 자기소개서를 없애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번쩍였다. 자기소개서 없이도 봉사 다니면서 같이 부딪치다보면 서로를 알아갈 것이다. C선배는 몇 가지 더 질문하고 면접을 마쳤다. 선배는 멤버들에게 이의 있는 사람이 있냐고 공개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너무 고요해 토굴 속 암자 같았다. 다시 C선배는 이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단체 박수로써 그녀의 입동을 축하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녀는 성실히 봉사를 수행하겠노라고 화답했다.
그녀의 사고방식이 나를 한 없이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명쾌하면서 재치가 넘치고 당차면서 유연한 반면에 나는 잡생각이 많고 소극적이며 우유부단하고 재치가 있기는커녕 고지식하니 가치관이나 성격이 그녀와 정 반대였으니 말이다. 짝사랑으로 끝날 운명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인연의 끈이 끊어짐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 쬐던 어느 날 보육원에서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녀와 나는 사는 곳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이었으므로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대로를 걷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근처를 둘러보다가 한 커피숍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매장으로 들어가 창 쪽 자리에 마주보며 앉았다. 그녀는 허브차를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차가 오기도 전에 그녀가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봉사동아리에 방문하던 날 지원서를 제출하고 동아리방을 나와서 면접 일정을 묻는 것을 깜빡하고 다시 동아리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자로 보내준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동아리방 안에서 저런 여자가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면 물을 흐릴 것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내가 그녀를 방어에 나서는 대화도 듣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때 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 동아리 입동을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오기가 발동했다고 한다. 또한 고마운 나를 그 동아리의 클리셰에서 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모두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수수하게 하고 다니던 그녀를 화장하게 하고 유행하는 패션으로 온 몸에 물을 들였다고 했다. 어느 정도 복수를 하지 않았냐며 내게 물어 왔다. 그 복수를 끝으로 그 동아리를 떠나려 했지만 아연실색하는 그들을 보면서 자기의 순수성을 되찾고 싶어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진실은 강철보다 강했다. 그녀가 진실을 보여주자 나도 용기가 솟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 넋을 잃고 내 마음을 고스란히 내어주어야 했다고 솔직히 입을 털었다. 진실이 강철보다 강해서 일까? 아니면 진실이 믿음을 잉태한 것일까? 그녀는 내가 믿음직스럽다며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캠퍼스 안에서 수업을 빼고 모든 것을 함께했다. 나는 회화과 그녀는 영문과로 우리는 서로 학과가 달랐지만 어떤 날은 수업도 같이 참여했다. 동아리 멤버는 물론 우리를 알든 모르든 모든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우리를 보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굳이 애써가며 치장하지 않아도 빛이 났기 때문이다. 사랑했으므로 투명했고 정직했고 진실했고 정의로웠고 그리하여 캠퍼스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캠퍼스를 떠나면서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사그라졌다. 졸업하자마자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입대한 뒤로 훈련소에서는 사진으로만 그녀와의 추억을 더듬었고 자대에 배치된 이후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실물을 보며 추억을 새로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해가 지나자 그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가족이 이민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론 연락이 끊겼고 연락이 끊긴 이유를 몰라 그 이유를 찾으려 술집을 순례하며 다녔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 했지만 연락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사랑했다고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전화번호도 서로 몰랐다. 내가 입대하며 내 휴대폰은 해지했고 혜경도 이민가면서 그녀의 휴대폰도 해지했을 테니 말이다. 또한 그녀와 거의 매일 붙어 다닌 관계로 이메일로 소통할 일이 없었으므로 이메일 주소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서 헤어질 때는 혜경의 집 앞이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집 위치를 알았지만 그녀는 우리 집 위치를 몰랐다. 우리는 사랑에 빠져 정작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문맹인 이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서로의 생일 정도였다. 동생의 실종을 위안 삼으려 가입하고 활동한 봉사동아리에서 다시 한 번 더 상실의 아픈 상처를 떠않아야 했다. 그 이후론 철저히 혼자여야 했다. 믿을 수 없는 여자들의 가치관에 더 이상 외로움을 의탁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짐꾼이었다. 동생의 실종과 어머니의 죽음과 혜경과의 연락두절에 대한 고통을 온 몸에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혜경을 만나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필로티 주차장에 버티고 엎드린 랭글러에 타고 운전석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S호텔로 향했다.
S호텔 스카이라운지에 들어서며 소파들 사이로 난 통로를 거닐며 앉아 있는 사람들을 죽 훑어 봤다. 혜경이 아직 길을 헤매는지 보이지 않았다. 뒷산이 보이는 창가 쪽에 스카이라운지 입구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웨이트리스가 내 앞 테이블에 물이든 컵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실내를 탐색하다가 입구 쪽을 보았다. 두리번거리는 한 여인이 내 좌석 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익숙한 얼굴인 듯했으나 누구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내 자리 건너편 소파 옆에 서서 나의 눈을 마주보며 강렬한 시선을 보내왔다. 자세히 보니 혜경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나의 시선 또한 그녀 못 지 않게 꼬나봤다. 그녀의 마음이 변한 만큼 외모도 변해서일까? 아니면 그녀를 본 지 칠년이 지난 시간의 길이 탓이어서 일까? 단번에 혜경이라고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혜경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냥 넋이 나가 통로에서 서있을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는 지금 처하고 있는 그녀의 상황을 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통로로 지나려던 사람과 엇갈리는 모습을 보고 어찌하지 못하고 서 있는 그녀를 나는 재빨리 앉으라고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권했고 나도 따라 앉았다. 우리는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웨이트리스가 내 앞에 커피를 놓고 물 컵을 그녀 앞의 테이블에 놓았다. 그녀는 허브차를 주문했다. 나는 그 시간 틈에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어내고 말문을 꺼냈다.
“지금도 미국에서 사니?”
“아니. 서울에 산지 거의 사년이 되가네.”
“그럼 완전히 귀국한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네가 이민 갈 때 왜 나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연락을 끊었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분명히 오빠 부대로 마지막 편지를 보냈는데.”
“난 받은 적이 없어!”
“난 오빠에게 갑자기 이민을 떠나서 미안하다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리 사랑 키워가자고, 그리고 제대하여 자리 잡으면 방문하겠노라고 구구절절이 내 마음을 보여주었고 미국의 집 주소를 추신 란에 덧 붙여 부대로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그녀에게 말문을 다시 열기 전에 그때의 상황을 더듬었다. 아! 그렇다. 그녀가 면회를 와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말 한 뒤 얼마쯤 지나 나는 다른 보병부대로 전출 간 기억을 상기했다. 전방부대의 후면에 배치되었던 나는 이웃 전방부대의 전력부족을 우려해 그 쪽으로 전출되었었다. 그 당시 김정은이 북한군의 완전무장 전시상태를 지시하여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 그때 편지배달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혜경아,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당시 부대이동이 있었고 그 때문에 네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네.”
“그렇지, 나도 오빠가 변심한 것은 아닌가했었지.”
“다시 편지를 보낸 다거나 잠시 우리나라로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혜경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머뭇거렸다. 웨이트리스가 혜경이 앞 테이블위에 허브차를 놓았다.
“그것이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물건들을 버리고 챙기고 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어. 그 와중에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들뿐만 아니라 가족사진앨범도 잃어 버렸어. 그런데……”
혜경이 뭔가 비장한 말을 이으려는 듯 찻잔을 입에 가져가 조금 마시다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민 간지 채 이 개월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사기를 당했어. 그 사기로 전 재산을 날렸지.”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데?”
“그때 나는 대학 입학관계로 바빴고 엄마는 그 충격으로 선망증세에 시달려 어떻게 사기 당했는지도 잘 몰라.”
“전 재산을 날렸으면 생활하기 어려웠겠는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막막했어.”
“미안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오해를 해서.”
“괜찮아. 그런 이유로 대학교도 휴학해야 했고 나는 돈 벌이를 해야 했어.”
혜경이 잠시 말없이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갈랐다.
“오빠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치만 않네. 이러려고 오빠를 만나려 한 것이 아닌데.”
“혜경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한데. 우리의 사랑이 자존심에 밀릴 정도로 허약했나.”
“미안해. 나의 그때 상황을 말하자니 복받쳐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너의 어려운 상황을 자존심에 빗대서.”
“처음엔 식당 홀 서빙을 했어. 그 일을 해서 둘이 살기에는 너무 박봉이더라고. 게다가 어머니는 점점 건강이 좋지 않았어. 그곳 병원비 엄청 비싸. 그래서 어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어.”
그 순간 혜경이 멈칫하더니 두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고 그녀는 파우치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더듬거리더니 잠시 숨을 고르려고 긴 한 숨을 지었다. 혜경이 말하려 하자 말을 더듬대는데 내가 더 이상 말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의 말을 끊었다. 혜경은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한숨을 내쉬곤 오른손으로 찻잔 손잡이를 잡고 허브차를 입에 가져간다. 입술에 대자마자 잔을 떼곤 다시 차받침에 올려놓는다.
“오빠,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어. 오빠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응어리 풀고 싶어.”
“그래, 그래라.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할 지도 모르지.”
“어떻게 하든 살려면 돈을 더 벌어야 했어. 그래서 식당 서빙이 끝나고 밤에 사무실 청소하러 다녔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그렇게 연옥 같은 세월을 삼년 동안이나 견뎠는데 그만 어머니까지 돌아 가셨어.”
그때 혜경이 고개를 숙이자 묶지 않은 긴 생머리가 두부를 가리는데 머리는 들썩이고 오른 손에 무언가를 쥐고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안으로 손을 넣고 연속해 비비는 것을 보았다. 눈물을 닦고 있던 것 같았다.
“혜경아, 우는 거니?”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오른손으로 찻잔을 잡아 입 언저리에 가져가 입김을 불어더니 이번엔 입술에 찻잔을 오래 대고 있었다. 그녀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음이 궁금해 물었다.
“그러면 장례는 어떻게 치렀어?”
“내가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어서 이모에게 연락했지. 그 사실을 이모에게 전하자 일주일 후에 우리 집으로 왔고 장례를 치렀지.”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된 거야?”
“내 사정을 들은 이모가 한국으로 와서 살자고 제안해 이렇게 오빠 앞에 나타난 거야.”
“모진 시련을 겪었구나.”
“이젠 다 지난 일이야.”
혜경이 다시 차를 마시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들 손으로 쓸어 넘겼다. 감정을 추스르려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심 궁금하던 말을 꺼냈다.
“교제하는 사람이 있어?”
“아니, 없어.”
“그러는 오빠는 있어?”
“나도 없어. 그럼 지금은 어디서 살아?”
“이모 댁에서 독립해 응암동에서 살고 있어.”
“나하고 같은 동네에 사네.”
“그래∼. 우린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 오빠.”
그 말을 할 때 혜경은 학창시절 때 보았던 눈빛으로 실내를 밝혔다. 조금 전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현실로 귀환했다. 혜경이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그곳에서 너는 살아가기 바빴고 나는 너를 찾기 바빴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던 중에 미국을 돌아다닐 땐데 금문교를 찍으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려 했지. 그때 그곳을 가기 전에 로스엔절레스 있는 오렌지 카운터에 있는 한인회를 찾아 갔어.”
“아, 거기서 나를 찾으려 했구나.”
“이젠 우리가 옛날처럼 마음이 통하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한인회에 내 사정 얘기를 했지.”
“그래서?”
“네 이름하고 나이로는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결국 무산 됐구나.”
“넌 포토그래퍼들의 인내력을 모르는 구나? 기자들도 아마 질겁할 걸?”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었어?”
“아! 참. 내 직업이 포토그래퍼야?”
“알아.”
“어떻게?”
“나 오늘 오빠의 대담 프로그램 봤어.”
“음, 그랬구나.”
“하던 얘기 계속 해봐.”
“네가 이민 갈 때 네 어머니께서 LA 한인 타운에서 큰 슈퍼마켓을 한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지.”
“그걸로 뭐하려고?”
“교민회에 부탁해서 한인 타운에 있는 큰 슈퍼마켓들의 주소를 얻었어. 한 열군데 정도 되더라.”
“야! 정말 대단하다.”
“내가 말했잖아. 사진장이들의 근성이 얼마나 끈질긴 데.”
“그럼 그곳을 다 다녔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장을 만나서 딸의 이름과 생일을 물었지.”
“허탕 쳤겠군. 나를 못 만났으니.”
“그건 당연한 결론이고,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이미 네가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내가 객기를 불인거지.”
“오빠의 집념은 알아주어야겠다.”
그곳에서의 며칠은 나를 피 말리게 했다. 나는 단순히 샌프란시스코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혜경을 찾겠다는 일념에 그곳을 들렸던 것이다.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여독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문제에 부딪혀야 했고 며칠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녀가 나와 어떻게 통화를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혜경아,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
“오빠가 출연한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을 보고 방송국에 전화해서 사정 이야기를 했지. 그랬더니 전화번호를 알려 주던데.”
“아∼ 그랬구나.”
“오빠가 대담 프로그램에서 내 얘기를 다 하던데.”
“응, 너에게서 영어 회화를 배웠다는 거?”
“그때 오빠의 마음을 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오빠를 만나고 싶었던 거야.”
“역시 혜경이는 예나 지금이나 영민해.”
“영민하다기보다 마음이 통하는 거야.”
“혜경아, 영아 기억나?”
“영아?”
“천주교에서 운영하던 소망보육원에서 살던 아이.”
“아! 내가 처음 봉사활동에 나설 때 오빠가 놀아주었던 그 아이.”
“그래.”
“나는 왜 오빠가 그 아이한테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이제 알겠다.”
“왜 그랬을까요?”
“그 아이 그때 나이가 네 살이었지.”
“맞아. 기억력 좋네.”
“오늘 대담 프로그램 보니 답이 나와 있구먼.”
“뭔데?”
“오빠 여동생 때문이잖아.”
“이그! 영민해.”
“영민한 것이 아니라 답을 미리 얘기 해놓고 물으니 그렇지. 지금도 거기 다녀?”
“국내에 있을 때는 매주 한 번씩 갔지.”
“정말 지성이다. 아마 오빠는 동생 꼭 만날 거야.”
“너도 양반은 못 되겠다.”
“왜?”
“너하고 통화하기 전에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납치범하고 동생의 신원이 밝혀졌어. 그런데 소재지가 파악이 안 된다네.”
“정말 잘 됐다.”
“동생을 찾을 실마리를 찾았으니 만날 날도 멀지 않았겠지.”
“아무 것도 몰랐을 때 비하면 천운이지.”
“그건 그렇고 아영이 사진 볼래?”
“그래,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네.”
나는 휴대폰을 꺼내 휴대폰의 앱들을 스크롤했다. 클라우드앱을 터치했다. 검색창을 터치하고 다시 인물메뉴를 터치했다. 검색창에 “아영”을 입력했다. 아영이의 사진들이 액정화면을 가득 채웠다. 내 휴대폰을 혜경에게 건넸다. 혜경이 내 휴대폰의 액정화면 위를 오른손 검지를 분주히 옮긴다.
“야! 오빠 대단하다. 나이별로 다 카메라에 담았네.”
“꼭 내 동생이 커가는 느낌을 받아서…….”
“지금 몇 살이야?”
“열한 살.”
“옷들도 좋아 보이네.”
“가끔 한 벌씩 사주고 학용품도 사주고.”
“이제 보니 오빠 키다리 아저씨구나.”
“보이는 키다리 아저씨도 있냐!”
혜경이 사진을 다 보았는지 휴대폰을 내게 건넨다. 나는 아영이를 보면서 내 동생이 커가는 것을 보는 착각을 하곤 했다.
“그건 그렇고. 혜경아, 지금도 곱창구이 좋아 하냐?”
“그런 것도 다 기억하네.”
“여부가 있나. 우리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우리가 만나던 시절을 얼마나 회상했겠냐. 그 정도 기억은 오늘이 며칠인지를 아는 정도에 불과해.”
“그런데 오빠, 그곳 한인 타운에도 곱창구이집이 있는데 우리가 가던 곳과는 차원이 달라.”
“당연하지. 곱창구이가 한국 음식인데. 원조가 왜 원조겠어.”
“그 음식 값이 내게 부담이 돼서 그마저도 자주 가지도 못했어.”
“혜경아, 출출한데 우리 곱창구이 먹으러 갈까?”
“오빠를 독심술사라고 불러야겠는 걸. 지금 막 구워진 곱창이 내는 연기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놨는데.”
“그건 독심술사라기보다 예견된 물음이었지.”
“오빠, 박자 좀 맞춰줘.”
“알았다. 그럼 그리로 가볼까?”
“고마워, 오빠.”
내가 일어서서 프런트 쪽으로 몸을 돌리자 혜경도 두 걸음 뒤에서 나를 따르고 있었다. 프런트 앞에 서서 카드를 꺼내 찻값을 계산했다. 옆에 서 있던 혜경을 쳐다보고 옛 생각이 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는데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서 과거 그때로 돌아간 듯이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 벌어지는 입술을 어찌하지 못했다. 자동문을 나란히 걸어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 상에 서있는 선수들처럼 우리 둘의 구두가 일직선으로 나란히 섰다. 우연이었지만 우리는 한 마음이라는 증명서라도 받은 듯이 뿌듯해했다.
“혜경아, 차 가져왔니?”
“나 차 없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탔다. 혜경이 내 차를 타자마자 한 마디 한다.
“차 좋은데.”
내가 시큰둥하게 맞대응했다.
“네가 고생한 거처럼 나도 고생 많이 했어. 노숙자처럼 산 결과물이야.” 우리는 곱창 집으로 향하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석양은 이미 검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사위는 어둑해졌다. 식당들이 즐비한 이곳은 벌써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곱창 집을 향하여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혜경이 감정을 드러냈다.
“오빠랑 드라이브하니 다시 연애시절로 돌아 간 느낌이 들었어.”
“늘 허전하던 조수석이 환해지던데.”
“내가 가로등이야?”
“또 샛길로 접어든다.”
그 말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곱창 집은 세련된 외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젊은이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대학시절 혜경이 곱창을 좋아하여 자주 들르던 곳인데 아직까지 많은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곱창 집으로 들어가 창가에 한 테이블이 남아있어 그곳에 앉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자 어색함을 털어내기 위하여 내가 혜경의 현재 상황을 알아야했다.
“혜경아, 지금은 어떻게 지내? 고생도 많이 했던 것 같던데.”
“고생 많이 했지. 이젠 다르지.”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고 여러 번의 손가락 터치하고 한 마디 한다.
“자, 내 활동사진이야.”
그녀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한 마디 덧붙였다.
“직업은 디지털 크리에이터야.”
그녀의 휴대폰은 질서정연한 피사체들이 격자무늬의 타일처럼 나열되어 있다. 하나하나 오른손 검지로 클릭하며 보니 사진들은 수준급 이였다. 작위적이기는 했지만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그 사진 속의 혜경은 남자들은 물론 여자도 휘어잡을 외모와 의상으로 철저히 치장했다. 화장기 없는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봉사동아리에서 멤버들 모두에게 아연실색하게 만든 그때의 외모보다도 더 놀라게 했다. 게시물들을 터치하며 훑어본다. 음식, 신발, 책, 옷, 술,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의 사진들을 강렬한 조명은 쉽게 각인시키게 했다. 그녀는 미모를 무기로 효과적으로 디지털 모델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인플루언서들 보다 팔로워 수가 턱없이 적어도 브랜딩과 피드 그리고 탭도 잘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진이 광고 사진과 연동되어 있다. 팔로우 수 보다 사진의 수가 몇 배나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콘텐츠들은 호의적이며 긍정적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소비 주체에게 어필하기 쉽다. 그러나 친밀감이 부족하다. 그녀의 연기력도 단점으로 보인다.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한 포즈. 배경들이 수시로 바뀐다. 장소 역시 수시로 바뀌는 것으로 봐서 전문 포토그래퍼가 있고 디지털 PD도 있는 것 같다. 팔로우 수는 많지 않은데 광고가 많이 달렸다. 내가 혜경에게 휴대폰을 건네면서 한 마디 했다.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엮였네.”
“그래서 수입이 짭짤하지.”
“내가 보기엔 크리에이터라기보다 모델에 가까운데. 아닌가?”
“오빠, 포토그래퍼라 보는 관점이 예리한데.”
불판 위에 빼곡히 드러누운 곱창이 배달된 관계로 이야기가 끊겼다. 직원이 가스레인지 위에 불판을 올려놓고 가스 불을 켜고 총총히 제 갈 길로 가버린다.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PD와 포토그래퍼가 각각 배정된 것 같은데?”
“응, 맞아. 귀신이네 귀신.”
“이렇게 연출한 것을 보니 혜경의 미모가 한 층 더 살아나네.”
혜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침을 놓는다.
“그러니까 실물보다 화보가 낫다는 말이네. 실망스러운데.”
“혜경이가 험한 세상에 노출되더니 성격도 많이 변했나 봐. 질투도 하고.”
“인간은 스물여섯부터 노화가 시작된다던데. 그럼 나도 엄연히 노인이 아니겠어. 변했어도 많이 변했겠지.”
혜경이 심드렁해 했다.
“자기가 자기를 질투하냐. 좀 유치하다.”
“정말 자꾸 비꼴 거야!”
“미안. 오랜만에 너를 만나니 옛 생각이 나서. 그나저나 귀국한 지 얼마나 됐지?”
“한 사 년 된 것 같네.”
“디지털 크리에이터는 언제부터 한 거야? 포즈가 좀 어색하던데.”
“오빠, 사실이긴 하지만 이제 자존심 상하는 말 그만 좀 해!”
“알았어, 미안해.”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어떻게 시작한 거야?”
“설치미술로 방송국에 다니는 사촌 언니의 중재로 시작했어.”
“우리 연애 시절 때 내가 네 집에 바래다주었을 때 보았던 그 여자?”
“응, 맞아. 내 생활 안정에 큰 역할을 해주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핏줄이라는 것이 끈끈하다. 그 타국에서 혼자서 어려움을 헤쳤을 그녀에게 이제는 이모라는 핏줄 때문에 비빌 언덕이 생겼으니 다행이 아닌가. 동생의 실종으로 초라해진 우리 가족도 다 핏줄이기에 겪어야 했던 아픔이었다.
“그럼 그 전에는 뭘 했어.”
“처음엔 우선 내 밥벌이라도 해야 해서 편의점 알바를 했어.”
“미국에서나 여기서나 생활이나 다르지 않았겠네.”
“이모네 집에서 생활했으니 집세 걱정은 안 했지.”
“그래! 그러면 생활은 버겁지는 않았겠네.”
“근데 언제까지 얹혀살 순 없잖아. 그래서 독립하려고 출판사들을 수소문해 영어 번역 일을 했어. 바쁘지 않을 땐 시간도 때우며 괜찮았어.”
“요즘은 투 잡을 많이들 하지.”
“그런데 영어 번역일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
“그래서 영어 번역일은 그만 둔 거야.”
“틈틈이 했지. 그래도 시원치 않아 영어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 봤어.”
“오! 그것도 괜찮겠는데.”
“근데 내가 대학 졸업장이 없잖아. 학원에서 받아 주질 않더라고. 내 영어 실력을 알아주는 학원은 월급이 형편없었고.”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장 없으면 실력이 있어도 인정을 해주지 않아.”
“그래, 맞아. 나는 그렇게 편의점 알바와 번역 알바에서 학원 알바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삼년 반 이상을 보냈는데 그래도 돈을 좀 모았어.”
“야! 그래도 다행이네. 먼 타국에서 먹고 살기 급급하다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니.”
“한 2개월 전에 사촌 언니 소개로 디지털 크리에이터의 일을 시작하면서 알바인생도 작별했지. 그 일이 수입이 괜찮더라고.”
“이모 댁이 너를 살렸네.”
“맞아, 그래서 얼마 전에 비로소 독립했어.”
“그래그래, 축하한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고소한 내음이 내 코언저리에 왔단 가고 다시 왔다 갔다. 나는 불판에 구워지는 곱창을 뒤집었다. 그녀가 독립했다는 말은 그동안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어 냈다는 말로 들렸다.
“자고로 고기를 잘 구우려면 불 조절이 중요해. 약한 불에 은근히 구워야 하거든.”
그러면서 나는 가스 불을 줄였다.
“그래야 타지 않고 골고루 익어. 말하자면 인내력이 필요한 거야. 다 연륜이 쌓여야 돼. 세상살이도 그렇거든.”
“대담 프로 찍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오빠 방송프로그램에서 인내력 얘기 했잖아.”
“바로 그거야. 인생을 잘 살려면 연륜이 필요한 거거든.”
“오빠, 나랑 이 년 차이 밖에 안 되는데 까마득한 선배처럼 말하네. 기분 참 그렇다.”
“이 년이라고? 삼 년 차이야. 내가 재수했걸랑.”
“공부에 별로 소질이 없었나 보네.”
“오늘 밑바닥 다 보여주네.”
나는 윗도리의 오른쪽 부분을 올려 배 오른쪽의 작은 절개 자국을 보여주었다.
“공부도 시원치 않았지만, 시험 전날에 맹장염 수술을 했어. 보나 마나 다음 날 시험 망쳤지 뭐.”
그때 내 휴대폰에서 통화음이 울렸다. ‘경찰’이라는 통화요구자의 별칭이 떴다.
“혜경아, 경찰이 동생 소식을 전해주려나 보내. 잠시 통화 좀 할게.”
“그런 통화는 그냥 해. 우리가 남인가?”
“남 아니면 부부인가?”
“또 시작한다!”
“알았어, 알았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순애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낮에 곽 상순씨와 통화를 끝내고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하여 탐문수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한 곳의 주소를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검거했나요?”
“그것이…… 그 주소지로 찾아 갔으나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또 이사를 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 주소로 주변을 탐문했는데 용의자와 동생분이 거기서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종적이 묘연하더라고요.”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진척이 되면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늦게 까지 근무해서 어쩌나요.”
“걱정해 주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당직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수고해 주세요.”
나의 심장은 피가 분출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거칠게 뛰었다가 가라앉았다. 경찰과 통화한 내용을 아버지에게 전화할까 망설이다 포기했다. 좋은 소식도 아니어서 괜히 심기만 어지럽힐까 저어됐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혜경에게 실망감을 드러내 보였다.
“혜경아, 동생을 만나는 것이 참 어렵네.”
“무슨 통환데.”
“경찰이 탐문 수사해서 용의자가 이사 간 주소를 확보했는데 또 이사를 한 모양이야. 그 다음은 종무소식이래.”
“오빠, 좋은 소식 올 거야. 우리도 만났는데 뭘.”
혜경의 비유가 나를 위로 했다. 만날 수 없던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지 않는가. 실종된 동생과 납치범의 신원이 드러난 이상 찾는 것은 시간이 해결하리라. 이십오 년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더 이상 처진 마음을 혜경에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분위기 살리는 말을 한 마디 했다.
“우리가 상봉한 날 축하주는 해줘야죠.”
“오빠 괜찮겠어?”
“오늘 기분이 좋아 아무리 먹어도 취할 것 같지 않네.”
나는 직원에게 손을 흔들며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혜경이가 한 말은 내가 술을 좋아 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내 의향을 물어 온 것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술을 멀리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와 연락 두절된 뒤로는 술을 자주 마셨다. 그 사이 곱창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직원이 와서 소주와 잔을 상에 올려놓고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순간 혜경이 속내를 꺼낸다.
“오빠, 우리는 삼 년을 넘게 사귀었는데 스킨십이라고는 손잡은 것이 전부니 숙맥 이었나봐.”
“혜경아, 나는 키스를 시도하려 했었지.”
“근데 왜 안 했어?”
“너의 집 앞에서 하려고 했지.”
“그러니까 왜 못한 거냐고!”
“네 사촌 언니가 번번이 너의 집 앞에서 서성대서 무산됐잖아.”
“정말, 그러니까 오빠는 속으론 흑심을 품고 있었네.”
“지금 말하는 것을 보니 나보다 네가 더 음흉했던 것 같다 야.”
혜경이 내심을 들킨 듯 쿡쿡거리며 입을 막고 웃는다. 나는 잔 하나를 혜경 앞에 놓고 소주를 따르고 내 잔에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손으로 잔을 잡고 팔을 들어 “재회”를 외치며 건배사를 하고 서로의 잔을 부딪친 뒤 잔을 비워냈다. 혜경은 구운 곱창 한 점을 집고 소스에 찍어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고 야무지게 씹는다. 나도 덩달아 입에서 오물거리는 데 혜경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오늘 만난 순간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생활고와 상실감과 막연함을 곱으로 녹여내는 듯했다. 참으로 운명이 간사하고도 엄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무런 준비할 틈을 주지 않고 떼어 놓은 뒤 갈망의 시간에 고통을 안겨주어 진을 빼놓고 다시 붙여 놓는다. 운명이 어떻게 다중인격체가 되었는지 몰랐으나 고마울 따름이다. 동생을 찾을 실마리를 잡았고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리를 환희 속에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다시 쓴 잔을 입에 담아서 비워내고 젓가락으로 곱창을 입속에 집어넣고 곱을 우려냈다. 혜경이 한 점을 더 씹어 삼키더니 미완으로 남던 나의 미련의 상처를 끄집어냈다.
“오빠, 오늘 대담프로에서 촉망받던 회화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빠가 그리던 그림이 떠오르더라고.”
“무슨 그림?”
“캔버스 위에 한자로 인쇄된 고문서를 풀로 붙이고 그 위에 흰색 물감을 칠했잖아.”
“응, 그거.”
“그때 어떤 갤러리의 전시회에서 오빠 초청했는데 제목이 아마 ‘유교는 유죄’였던가?”
“기억력이 대단한 걸.”
“그림 제목 때문에 유림단체에서 항의하며 난리 쳤잖아.”
“그랬지.”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왜 그런 제목을 붙인 거야.”
“그걸 말하기 전에 완성된 그림을 설명해야겠는데.”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냐?”
“우선 그림은 논어의 원본을 한지에 복사해서 붙인 거고 그 위에 바둑판 모양의 격자무늬를 검은 물감을 이용해서 그린 거야.”
“오~ 그렇구나.”
“그 격자가 쇠창살을, 복사된 논어는 유교를 상징화한 거지.”
“유교가 그 쇠창살에 갇혔다고 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구나.”
“그런 셈이지.”
“유교 사상을 왜 그렇게 모질게 취급한 거야.”
“실종된 여동생이 살아갈 곳이 유교주의가 팽배한 사회였잖아.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불평등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어.”
“봉사동아리 활동한 것도 다 동생 때문이었겠네.”
“내가 말 안 했었나?”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과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가끔 깜빡깜빡해.”
“그렇기도 하겠다. 맞아, 다 동생 때문이었어.”
“오빠는 과거를 생각할 시간이 많았나 본데 나는 생각할 틈이 없었어.”
그녀가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한 계기에 대하여도 모른다. 이미 생각한 바이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꼼꼼히 알아야겠다. 우선 연락처부터라도.
“혜경아, 지금부터 우리 서로에 대해 샅샅이 알아보자.”
“그래, 그러자. 우리가 겪은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면 안 되지.”
“혜경아, 우선 연락처부터 박아 놓자.”
나는 바지를 뒤적거려 스마트폰을 꺼낸 뒤 검지를 몇 번 꼼지락대며 키패드로 설정해 혜경에게 넘겨주었다. 혜경이 검지를 상하좌우로 휘젓자 탁자 위에 놓였던 스마트폰 벨이 울리고 검지를 잠깐 눌렀다 떼자 울림이 사라졌다. 통화목록을 보고 그녀의 번호에 글자판을 다섯 번 눌러 ‘종지’라고 연락처에 추가했다. 그녀는 나의 휴대폰에 뭐라고 입력했는지 물어 왔다. 내가 ‘종지’라고 말하자 창의력이 대단하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더니, “예쁜데”, 라고 덧붙였다. 나도 혜경에게 물었더니 비밀이란다. 내가 불공평하다고 투정부렸지만 그녀는 너무 많이 알면 실망한다며 나의 궁금증을 그 말로 삼켜버렸다. 그때 내 휴대폰을 보며 나는 웃고 말았다. 전화의 최근기록을 실수로 눌러 “종지”가 두 개가 뜬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혜경아, 네가 나에게 전화해서 우리가 만난 거잖아. 이미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남았는데 내가 엉뚱한 짓을 했네.”
내 휴대폰을 혜경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네, 나도 뭐에 홀렸나 보네.”
“우리 둘 다 재회의 흥분으로 이성을 털린 것 같다야”
우리는 입을 막고 쿡쿡하며 웃음을 참아냈다. 그 기분을 증대시키려 우리는 다시 잔을 합체하고 한 잔씩 들이키고 다시 곱창의 곱을 내 삼켰다. 불판에서 나는 연기가 흡입구로 들어가자 나는 가스 불을 약하게 줄였다. 그리고 곱창을 뒤집었다. 혜경이 술은 뒤로 한 채 곱창을 열심히 입으로 날랐다. 나도 시장기가 돌아 곱창을 연이어 먹었다. 나는 그렇게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입가심으로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한숨을 돌렸다. 그녀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가 연애 시절에 이곳에 와서 먹었던 때를 회상했다. 그녀도 그랬는지 숨을 몰아쉬고 휴지로 입술을 닦으며 그때를 떠올리는 물음표를 나에게 던졌다.
“오빠, 기억하나 모르겠네?”
“뭔데?”
“나, 일 학년 때 우리 학과의 수업을 오빠하고 같이 들었었는데?”
“너의 학과 수업을 도강한 것은 한 번 뿐인데 기억 못할 리가 있나.”
“작년에 오빠가 생각나 모교에 간 적이 있었거든. 근데 우연히 그 교수님을 만났어.”
“영어학 입문 교수?”
“어! 기억하네.”
“혜경아, 내가 왜 그것을 기억을 못 하겠니!”
“그럼 그 때 상황도 기억나?”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우리 둘이 맨 뒤에서 붙어 앉았잖아.”
“그게 전부야?”
“나를 띄엄띄엄 보네.”
“그래서.”
“그 교수님이 나를 영문학과 학생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둘은 무슨 관계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잖아.”
“그 걸 다 기억하네!”
“그 걸 기억 못하면 치매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해?”
“그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곤 내리 두 시간을 연강 하셨잖아.”
“오빠 기억력 대단하다.”
“그 뿐이냐. 다른 학생들 눈치도 봤잖아. 쉬는 시간 없어서. 또 나는 나대로 알지도 못하는 수업을 받느라 곤욕을 치렀고.”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방금 그 수업을 받고 나온 학생처럼 느껴졌다. 혜경도 내가 구체적으로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흥분했는지 몸을 앞으로 약간 내밀었다.
“야! 정말 기억력 대단한데.”
“그래서 그 교수 만나서 어쨌는데.”
“우리 둘을 그때도 기억하시던데.”
“어떻게?”
“둘은 결혼했냐, 아니면 아직도 사귀냐, 아니면 헤어졌냐면서.”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헤어졌어요.’라고 말씀드렸어.”
“혹시 연강 하신 이유는 말씀 안 하시던가?”
“둘이 꼭 붙어 있어 다른 학생들이 방해될까 얄밉더래.”
“야! 그 교수님 뒤끝 장난 아니네.”
“근데 그 교수님이 둘이 잘 어울려 보기 좋았다고 덧붙이시더라.”
“혜경아, 술도 곱창도 다 동났네. 하나씩 더 시킬까?”
“그러지 뭐.”
우리는 소주 한 병과 곱창 일 인분을 주문했다. 나는 흥분해 있었고 그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알코올의 기운을 빌리기로 했다. 혜경이 역시 낮에 있었던 불편한 진실게임은 잊고 그 교수님과의 조우 이야기가 우리의 추억이 진행 중이라는 증표라고 말하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 흥분을 가라앉고자 그녀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자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뒤에서 “오빠, 나도 하나 줘봐.”라는 혜경의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 봤다.
“너, 담배도 피우냐?”
“얼른 한 번 줘봐.”
나는 그녀에게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는 한 모금 빨더니 콜록거렸다. 다시 한 모금을 빨더니 역시 기침을 해댄다. 바닥에 버리며 발로 밟는다.
“아니 이 독한 것을 사람들은 왜 피우는 거야?”
“나도 군대에서 선임이 피우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배웠어. 문제는 그 이후론 끊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 모금 뱉어냈다.
“이 몹쓸 것 때문에 나 같은 미인을 두고 나왔단 말이야?”
“오늘 거의 안 피웠더니 금단현상이 일어나네.”
“대충하고 들어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배를 버리고 발로 비볐다. 혜경을 뒤따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과 곱창 일 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앉자 바로 충고가 뒤따랐다.
“그 몇 모금을 못 참고 분위기를 깨네. 믿음성이 안가.”
“믿게 해줘!”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반으로 꺾었다.
“봤지. 나 담배 끊었어.”
“오빠, 알았어. 쇼 그만하고 그냥 피워.”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이네. 유머 감각이 없어.”
“내가 웃을 수 있게 유머 한 토막 해봐.”
“난 너를 사랑해.”
혜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너, 웃었어.”
“유행가 가사 아니었어.”
“아냐, 네가 유머를 진실로 받으니까 바꿔 봤지. 진실을 말해서 유머로 들으라고.”
“그럼 나 사랑한다는 말은 진실이라는 거네.”
”그 ‘사랑’ 이제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냐?”
“아니, 매 순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야. 그리고 그 말 칠 년이나 못 들었잖아.”
“그래, 품 드는 것도 아닌데. 언제든지 해주마.”
“그래야지.”
불판 위의 곱창에서 연기가 배기구 속으로 피어 들어갔다. 살짝 불을 줄이고 곱창을 뒤집었다.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혜경아, 다음 우리가 만날 때 메뉴는?”
“추·어·탕·!”
“딩동댕.”
“우리가 다니던 추어탕 집 아직도 영업하나?”
내가 휴대폰에 “원주 추어탕”을 검색했다. 여러 추어탕집이 줄줄이 이어졌다. 화면을 스크롤 하자 ‘원주 추어탕’에서 멈추었다. 터치하니 우리가 다니던 추어탕집이 맞았다. 나는 휴대폰을 스캔하면서 말을 이었다.
“혜경아, 아직도 성업 중인가 보다.”
“어련하겠어. 맛집인데.”
“벌써 부터 고소한 향내가 나는 것 같네.”
“나 아니었으면 오빠의 음식 메뉴는 십분의 일로 줄었을 거야.”
“아마 외식 메뉴에서 많은 것을 제외시켜야 했겠지.”
그것은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았던 혜경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그녀가 대학교 1학년 초가을에 나와 도봉산을 올랐다. 씩씩대며 힘들게 올라가는 그녀 보고 내가 놀리듯 올라갔다가 처진 그녀에게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하면서 자운봉에 도달했다. 장난치며 오른 탓으로 힘이 풀려 이번에는 혜경이 놀리며 하산했다. 우리는 지친 체력 탓에 허기가 져 맥이 풀린 상태였다. 그랬던 이유로 그녀가 추어탕을 선택했을 때 징그러운 먹거리를 손 사레 쳤던 나로서는 마지못해 그 추어탕 집의 문을 넘었다. 내 위장에서 밥알이 설 것 같던 추어탕이 나오고 억지로 퍼 넘긴 한 숟가락을 먹고 나자 그 고소함에 입천장이 데도록 정신없이 먹었었다. 그 이후론 입이 짧던 나는 혜경처럼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혜경이 맛있다며 앞서며 찾아다닌 음식점의 메뉴를 나는 그것이 곱창이든 순대든 생선회든 내장 해장국이든 이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우리는 누렇게 익은 곱창을 안주 삼아 꾸역꾸역 술병을 비워냈다. 꿈같던 연애 시절의 기억을 더듬거려서 함께 쌓았던 추억들을 얘기를 하며 소주 두 병과 곱창을 삼 인분을 구워 먹었다. 혜경은 2차로 자기 집에서 내가 좋아 하는 회를 대접하겠노라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나는 사랑하는 혜경과 오랜 끝의 재회여서 쉽게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터라 그녀의 제안에 반가워 소리 지를 뻔했다. 또한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증도 풀고 싶었다. 우리는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혜경의 지시로 대리운전 기사가 평범한 사 층 연립주택 앞에서 주차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우리는 나란히 그 연립주택의 계단을 올랐다. 이 십여 개쯤의 계단을 힘겹게 오른 끝에 ‘301호’의 표지판에서 혜경이 멈췄다. 현관문 앞 바닥에 커다란 푸른 봉지가 놓여있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집으려 할 때 내가 낚아채서 오른손으로 들었다.
“차 타고 오면서 주문한 음식인가 봐.”
밤이 깊어서인지 혜경이 봉지 비밀을 나에게만 알린다는 듯 그녀의 입술을 내 귀에 바싹 대고 속삭였다. 나는 비닐봉지 묶인 사이로 보며 그녀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나도 낮은 목소리로.
“그런가 보네.”
우리는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서 접이식 상위에 비닐 속에 들어 있는 두 판의 회 접시를 봉지에서 꺼냈다. 겨자와 간장과 초장과 소주 그리고 일회용 잔과 나무젓가락도 마저 꺼냈다. 상 위에 놓고 랩을 벗겨내자 접시 하나엔 광어회 또 다른 접시엔 송어회가 먹기 좋게 쓸려있었다. 혜경의 집은 좁은 원룸이었다. 접이식 상을 펼치니 거실이 꽉 찼다.
“집이 좁고 복잡하지.”
“그러게”
“그래도 내가 손수 벌어 마련한 집이라 불만 없어.”
“네 돈벌이가 괜찮으니 더 넓은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집이 너무 좁으니 불편해.”
그녀의 의도를 간파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인생은 너무 써. 그래서 난 가끔 초콜릿을 먹지. 달콤해지라고.”
“그럼 나도 먹어 봐야겠네.”
“아마 당 충전으로 기분 전환은 될 거야.”
“오빠, 편한 옷 하나 줄까?”
“나한테 맞는 옷이 있기는 하냐?”
“그러고 보니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네.”
내가 소주를 들고 혜경을 보았다. 혜경이 알았다는 듯 소주잔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내 잔에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소주잔을 비우고 각자 회 한 점씩 먹었다.
“혜경아, 우리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회 먹던 때 기억나?”
“그럼 기억나고말고.”
“내가 물컹거리는 거 싫다고 했는데도 남자가 쫀쫀하게 먹는 걸 가린다고 네가 핀잔을 줬잖아.”
“그 이후론 오빠가 회 마니아가 됐지, 아마.”
다시 내가 그녀와 내 잔에 술을 채우고 나만 다시 들이켰다. 송어회 한 점을 먹었다. 그러면서 변명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이 고소한 것을 마다한 적이 있었다니.”
혜경도 소주를 들이켰다. 괴로움을 마셔 소화할 것처럼. 나는 하품하려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나에게 별 관심이 없나 보네.”
“어이구, 아냐! 졸려서 하품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뭔데?”
“하품은 배부를 때도 일어나는 생리현상이야.”
“오빠는 잡지식이 많아.”
“그러고 보니 나는 네 집에서 입만 벌린 것 같네.”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말씀.”
“말하면서 입을, 술 먹기 위해 입을, 안주 먹기 위하여 입을, 숨을 몰아쉬기 위하여 입을, 이젠 하품하면서 입을 벌렸네.”
“뭐야!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긁어모으네.”
“내 습관 같은 거야.”
“습관도 참 별나다.”
나는 머리를 도리질하며 소주를 마시고 송어회를 초장에 찍어 먹었다.
그랬다. 작품성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뷰포인트 타이밍을 잡기 위하여 기다릴 때 생긴 버릇이다. 지루함을 잊기 위해 망상을 하곤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생각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늘 지루했다. 그럴 땐 주로 밤이었다. 하늘을 보면 정말 별이 많다는 것을 도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하늘엔 별들이 빼곡히 그리고 촘촘히 박혀있었다. 셀 수 없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그중에서 유난히 밝은 먼 별도 이렇게 또렷이 보이는 데, 이 작은 행성에서 동생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은 내 눈을 흐리게 하곤 했다.
“외로움이 나를 특이한 습관으로 내몰았어. 그 외로움 때문에 네가 더욱 생각나더라.”
“오빠, 이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어째서?”
“이젠 옛날처럼 항상 오빠 옆에 내가 있을 거거든.”
“그거 정답 같은데.”
“우리 새로운 출발을 기념으로 오늘을 다시 애인이 된 지 일 일로 할까?”
“너 애인을 만드는 버릇 있는 거 아냐?”
“오빠하고 떨어져 산지 몇 년 되었더라?”
“칠년이지.”
“난 그동안 한 번도 남자를 사귄 적이 없거든.”
“나 또한 역시지.”
“나는 아무 남자에게나 꼬리치는 헐렁한 여자 아니야. 섭섭한데.”
“농담했을 뿐인데 새롱거리네.”
“내가 새롱거린다고. 나 이제부터 말 안 해!”
“미안, 미안. 네가 삐지니 귀여워서 그런 거야. 이제 기분 풀어.”
그제야 혜경은 미간의 주름을 폈다. 나는 미안하다는 의미로 혜경과 서로의 잔을 부딪친 뒤 단숨에 들이켰다. 혜경이 답례라도 말을 돌렸다.
“오빠, 오빠가 동생 찾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를 찾으려 했었어.”
“이혼하셨다던 그 아버지?”
“응”
“왜! 못 찾았어?”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면 주소를 알 줄 알았거든. 아니더라고.”
“나처럼 경찰에게 의뢰하지.”
“오빠는 내 대변인인 것 같아.”
“왜?”
“내가 경찰에 의뢰했지.”
“그래서 너의 아버지 주소 알아냈어?”
“내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경찰에게 보여줬지.”
“그랬더니 뭐라든?”
“주소를 알려 주더라고.”
“그래서 찾아갔어?”
“좀 망설여지더라고.”
“왜?”
“재혼해서 잘 사는 분이 나를 꺼려할까 두려웠어.”
“우리가 만나고 나서 오해가 풀리던 것처럼 무조건 만나고 봐야지.”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아.”
그녀는 술을 들이켜고 광어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 나는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뭐 하나 그녀의 의지대로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혜경이 봉사동아리의 가입을 위한 자기소개서에서 대 놓고 자기 의지대로 살지 않았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해명과 다르게 자기소개서에는 솔직히 적은 듯했다.
“복잡할 것이 뭐가 있어?”
“우리 부모님이 이혼 당시에 어머니의 배 속에 내가 있었거든.”
“아버지하고 만나는 것과 그것이 무슨 문제가 돼.”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모르셨다는 거야.”
“그래, 좀 애매한데.”
“아버지가 나를 자기의 딸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하시더래.”
“유전자 검사라도 하라고 하지.”
“돈 들여가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냐는 거야. 뻔한 결론이 날 것을.”
“난 외도한 적도 없다. 그러니 검사하자고 다그치시지.”
“아버지 성격에 통할 것 같지 않아 어머니가 포기하셨대.”
“그럼, 너도 포기했어.”
“아니, 그 주소지로 찾아갔어.”
“그래서 만났어.”
“어머니 말씀 듣고 대 놓고 만날 수 없어서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새벽부터 그 근처에서 기다렸어.”
“그럼, 아버지는 재혼하신 거야?”
“응. 그래서 초인종도 못 누르고 기다렸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집에서 중년 신사가 나오자 슬쩍 쳐다봤지.”
“그게 다야?”
“응, 사진에서 본 모습하고 똑같더라고. 그때 아버지를 태어나서 처음 봤어.”
혜경이 또 눈물을 흘린다. 내가 러그 옆에 놓인 티슈를 뽑아 혜경에게 건넸다. 혜경이 눈물을 닦고 심호흡하더니 다시 소주를 마신다. 나도 따라 마셨다. 나는 혜경에게 위로하느라 내 처지를 상기시켰다.
“그래도 너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의 얼굴은커녕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둘 다 가슴에 돌을 얹고 사는구나.”
우리의 환희를 슬픔이 갉아먹고 있었다. 돌파구를 찾을 냥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한 마디 했다.
“혜경아, 우리가 캠퍼스 잔디에서 자주 들었던 팝송 기억나?”
“캔자스가 불렀던 거?”
“응. 제목 기억나?”
“제목이 ‘Dust in the wind.’이지?”
“맞아.”
“오빠가 우리네 인생이 그 노래 가사 같다고 자주 들었잖아.”
“그 가사 비하인드 스토리도 기억하냐?”
“인디언 시집에서 한 구절, 구약성서에서 한 구절을 모티브로 썼다는 거.”
“역시 혜경이는 영민해.”
“영민하다는 말도 사랑만큼이나 듣기 좋은데.”
“혜경아, 텔레비전 상단 거치대에 놓여 있는 것이 블루투스스피커지?”
“응.”
“한 번 들어 볼까?”
“그래.”
그녀가 블루투스스피커를 켰다.
나는 핸드폰을 혜경의 충전기에 꽂고 핸드폰에서 음원이 들어 있는 앱을 열어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기타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이윽고 본격적으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I close my eyes …… Dust in the wind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혜경과 캠퍼스 잔디에 앉아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듣던 순간을 떠올렸다. 혜경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음악을 따라 가사를 번역해 가며 우리말로 흥얼대고 있었다.
“……집착하지 말기를 땅과 하늘 이외엔 영원한 것은 없나니……”
한 곡이 끝나자 혜경이 말했다.
“정말 인생이 별거 아닌데…….”
혜경이 감정이 추슬러진 듯 그렇게 뇌까렸다. 한 곡을 계속 되돌려 듣기로 세팅되었기 때문에 그 곡은 반복되었다. 혜경은 건배를 외치 듯 나를 향해 잔을 든 손을 높이 들었다. 내가 혜경의 잔에 내 잔을 대자 우리는 함께 잔을 비웠다. 나는 갑갑한 이 공간에서 혜경을 탈출시켜 주고 싶어 한 가지 제안했다.
“혜경아, 나랑 여행가지 않을래?”
“아! 그렇지. 오빠 여행 많이 다녔겠다.”
“좋은 곳들은 속속들이 꿰고 있지.”
“나야 그렇게 해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지. 어디로 갈 거야?”
“우포늪이라고 들어 봤어.”
“처음 들어 보는 곳인데.”
“도시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이곳을 꼭 한 번 가야 할 곳이야.”
“왜?”
“나는 그곳이 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무엇 때문에?”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습지에 몽환적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평화스러운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가보고 싶네.”
“사진작가들이라면 다들 한 번 이상은 가봤을 거야.”
“그렇게 유명한 곳을 나만 몰랐네.”
“그곳에 생태 지킴이들이 있어.”
“생태 지킴이가 뭐야?”
“일종의 우포늪 관리인이랄까.”
“음! 그렇구나.”
“그분들이 나룻배로 늪지대를 누비거든.”
“왜! 고기라도 잡나?”
“어부냐? 고기를 잡게. 처음엔 늪을 관리하기 위하여 다녔는데…….”
“그런데.”
“그 모습이 신선 같다며 사진작가들이 포즈를 요청하기 시작했어.”
“정말 기자하고 사진장이들 극성은 알아줘야 해.”
“그 이후론 관리인들이 모델이 되었다니까.”
“나처럼.”
“그건 아니고, 그분을 모델로 찍은 것 중에서 작품성 있는 사진이 꽤 나왔거든.”
“그러니까 더 가보고 싶네.”
“난 언제든 괜찮으니까 네가 시간을 정해.”
“알았어. 내일은 안 되고 모레 가자.”
“그러자.”
오늘 그녀를 만나면서 과거의 관계를 현재로 이어 붙이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였다. 혜경과 여행 가기로 약속한 것으로 이젠 단절된 시간을 잘라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다고 생각했다.
“오빠도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어?”
“몇 번 찍었는데 때를 맞추지 못했어. 내가 찍은 거 보여줄까?”
“어디 한번 보자.”
충전기에서 내 스마트폰을 뺐다. 클라우드 앱을 터치했다. 사진이 떴다. 검색창을 터치하고 다시 장소를 눌러서 ‘우포늪’을 입력했다. 여러 장의 사진이 떴다. 혜경에게 내 휴대폰을 건넸다. 혜경이 이것저것 누르며 열심히 탐색한다.
“대부분 흑백 사진이네.”
“아마 그것이 더 몽환적 운치가 있을 거야.”
“이 흑백 사진을 보니 오빠가 말하는 뜻을 대충 알겠네.”
혜경이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준다. 나는 다시 충전기에 그것을 꽂았다.
계속 음악은 반복되고 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 초장에 찍었는데 젓가락이 엇갈리며 송어회 한 덩이가 튀었다. 내가 앉은 곳에서 상을 넘어 날더니 혜경이의 허벅지에 살포시 앉는다.
“어이구 야! 미안. 회가 칼로 베어 낸 살점 같다 야. 초장은 피같이 않니?” 그러면서 나는 허리를 숙이며 엉거주춤 일어나 손가락으로 그 회 한 점을 집어낼 때 혜경의 허벅지가 두 번 정도 경련을 일으킨다. 혜경의 손이 내 손을 덮쳤다. 나는 목을 젖혀 혜경의 얼굴을 쳐다봤다.
“오빠, 키스는 해봤어?”
“아니. 난 해본 적이 없어.”
“나도 해본 적 없는데 우리 해볼래? 오빠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그녀의 눈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구하는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회 한 점을 상위에 놓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옆으로 무릎으로 디디며 갔다. 혜경의 입술 위에 나의 입술을 포갰다. 입술을 비비고 혀를 감기를 연신 해댄다. 우리의 첫 키스는 격렬했다. 나는 욕정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서 떼어 냈다. 나는 두 팔로 앉아 있는 그녀를 안아 일어났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우리는 키스를 퍼부으며 얼마간의 몸부림을 쳤다. 처음 겪는 쾌감이다. 온몸을 뒤덮었던 묵은 찌꺼기들이 배설되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생명을 위한 자정의 시간이었을까? 온몸은 흥분이 되어 바람에 나뭇잎이 떨 듯했다. 왜 인간이 동물과 달리 성욕이 일어날 때마다 이 짓을 하도록 진화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의 결실이 다 이런 쾌락을 가져다주나? 그런데 왜 인간은 교합을 은밀히 하는 걸까? 동물들은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교미하는데. 그런 의문표들은 욕정으로 들어서는 문고리에 불과했다. 그녀와 몇 번을 더 뒹굴었다. 세친은 대승오온론에서 즐겁다는 느낌이란 그 지각 대상이 사라질 때 그것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냥 이대로 포개져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이 성욕은 전두엽에서 관장하는데 늘 이 성욕에 잡혀 있으면 아무 일도 못 할 것이다. 다행히도 전두엽이 같은 부위에서 절제를 지시한다.
기타의 선율에 정신이 들었다. 이미 창 너머에는 태양이 걸쳐 있었다. 나는 한 올도 없는 나신이 얇은 이불자락에 덮여있었다. 나는 전등 장식장 위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었다. ‘경찰’이라고 통화자의 별칭이 떴다. 통화버튼을 밀었다.
“안녕하세요?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순애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탐문수사 중에 알아낸 사실이 있었습니다. 진자경이 이민갔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아보니 미국으로 출국한 정황을 확보했습니다.”
“그럼, 미국과 공조 수사하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 우선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신분 조회를 의뢰했습니다.”
“다행히 연결고리를 찾은 셈이네요.”
“예, 그렇죠. 저희도 수사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그럼, 다시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머리가 묵직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젠 동생의 새로운 소식에도 감정의 선을 찾을 수 없었다. 다급한 심박수와 긴장감에 이은 흥분도 그리고 우울감도 자취를 감췄다. 혜경과의 본능적 오감을 교환한 것이 이를 상쇄한 것일까. 인기척이 있어 문 쪽을 바라보니 분홍색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혜경이 왼손으로 문틀을 잡고 오른손은 물컵을 들고 서 있었다. 혜경은 내게 물컵을 내밀었다.
“오빠, 목마를 텐데 물 먹어. 동생 찾을 수 있다는 거지?”
물컵을 받아 물을 단숨에 삼키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기다려 봐야겠어.”
“그나저나 오빠 배고프겠다. 어서 나와 해장이나 해.”
나는 전등을 받치고 있는 장식장에 물컵을 내려놓았다.
“혜경아, 이리 와봐.”
나는 두 팔을 뻗었다. 혜경은 기다렸다는 듯 나의 품에 안겼다.
“혜경아, 내가 동생을 찾으면 우리나라 곳곳의 비경을 보러 다니자.”
“그럼, 동생 찾을 때까지는 우리는 여행 한 번 못 가겠군.”
혜경이 비아냥대면 입을 내밀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일 우포늪 가기로 했잖아”
“아! 그렇지.”
“무엇에 정신 팔려 몇 시간 전 것도 기억을 못하노.”
“그러게, 정신없네.”
“내일 가기로 한 약속 잊지 마.”
“스케줄 확인해 보고.”
“연예인이 따로 없네. 스케줄을 확인한다니.”
“또 꼬리 잡았네.”
“그래, 그래. 아휴 아무 말이나 못 하겠네.”
“알았어요! 그나저나 출출할 텐데 밥이나 먹자.”
혜경이 일어서려 할 때 물컹한 밀착감과 동시에 뭉툭한 것이 닿았다. 그때 오른손으로 허리를 잡았다. 의문의 지점으로 나는 왼쪽 손가락들로 그녀의 네글리제 속으로 집어넣어 그녀의 몸을 더듬어 본다. 딴딴한 젖꼭지가 손가락을 타고 내 뇌에 전달되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되는지 귓전이 찌릿하다. 순간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치자 지난밤의 흥분이 두뇌의 시냅스들을 번쩍이게 하였다. 왼손으로 가슴에 밀착된 그녀의 머리를 젖히고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가져갔다. 어제처럼 흥분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의 두뇌에 피를 퍼 올렸다. 지난밤에 휘몰아쳤던 배설의 욕구가 다시 분출되어 귓전을 때려댔다. 왜 옥황상제가 견우와 직녀를 일 년에 한 번만 만나게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욕정이란 무서웠다.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뿌리치기 어려웠다. 혜경은 숨을 몰아쉬고 네글리제를 고쳐 입었다.
“오빠, 이젠 밥 먹자.”
“알았어.”
나도 옷을 입었다. 그녀는 거실로 나가면서 자랑하듯 한마디 했다.
“해. 장. 국. 내가 끓였다~.”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면서 궁금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 어디 맛 좀 보자.”
북어 국을 한 숟가락 마셨다. 시원한 맛이 감돌았다.
“정말 맛있네. 정말 네가 한 거야?”
“정말이라니까.”
“오호라, 살림꾼이네.”
나는 밥을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보고픈 이를 만나 정답게 얘기하고, 향기로운 공간에서 밀월을 즐기며 탐욕으로 보낸 이 짧은 시간의 여운을 남기면서 차마 돌아서기 아쉬운 발길을 떼야 했다.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나, 볼 일 있어 간다. 오후에 연락할 께.”
“나도 촬영이 있어.”
“그래! 그럼, 먼저 일 끝나는 사람이 전화하기로 하자.”
“알았어, 조심히 가.”
현관을 나서며 대답했다.
“해장국 잘 먹었다.”
혜경이 “여기서 자고 간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야.”라며 내 뒤통수에 대고 살갑게 대답한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 산소에서 성묘를 마치고 왔던 길을 복귀하고 있었다. 그때 경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곽상순씨, 대사관에서 동생 분은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하네요.”
“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우리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조회를 요청했더니 귀국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럼 동생 만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죠.”
“아휴, 고맙습니다.”
“그럼, 전 동생분의 소재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예, 수고해 주세요.”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지라 아버지도 통화 내용을 다 들으셨다.
“아버지, 동생을 만날 듯합니다.”
“말년에 웬 복이라니.”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께서 직장에서 퇴근한 후 곧장 집으로 오셔서 우리 남매를 보시곤 함박웃음을 지으실 때와 표정이 꼭 닮았다. 그 표정에 나도 배시시해 하며 기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에 하늘도 알았다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내 차의 액셀도 아는 냥 차를 경쾌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옆 차선에서 SUV 차량 앞 범퍼 모서리가 내 차선 쪽으로 밀고 들어온다. 접촉 사고를 피하려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자 이번엔 중앙차선을 넘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브레이크 페달을 세게 밟았다. 우리는 앞뒤로 크게 흔들렸고 마주 오던 세단도 우리 차를 피하려 핸들을 세게 돌렸는지 산기슭 축대 쪽으로 내지른다. 그 세단은 축대를 박고 반쯤 기운 채 섰다. 다행히 우리 차는 뒤따라오는 차가 없어 추돌은 피했다. 나는 백미러로 도로 뒤의 상황을 보며 천천히 갓길로 차를 몰았다. 나는 스마트폰 거치대에서 휴대폰을 뽑은 뒤 아버지에게 사고 난 차량에 가봐야겠다고 말씀드리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흐름을 보며 중앙선을 넘어 사고 차량으로 다가갔다. 우선 그 차량 안쪽을 살폈다. 운전석의 운전자는 나를 보더니 머리 쪽의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뒷좌석을 살펴달라고 부탁한다. 뒷좌석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뒷좌석의 남녀는 의식이 없는 듯했다. 나는 휴대폰으로 119로 전화를 걸어 사고 위치를 말하고 두 대의 구급차를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112에도 전화를 걸어 사고 내용을 신고했다. 그런 다음 사고 차량 뒷문을 열려 했으나 차가 약간 기울어 여의치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두 손으로 세게 문을 당겼다. 그 문이 약간 찌그러졌으나 문을 간신히 열 수 있었다. 순간 나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의 정체는 혜경이였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의식이 없는 그녀를 어찌해야 하나 어정쩡하게 멀뚱거리고만 있었다. 그럴수록 침착해야 했지만 너무나 놀란 나머지 머리가 아득하기만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혜경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혜경아! 혜경아!”
역시,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 불렀다.
“혜경아! 혜경아!”
역시 반응이 없었다. 나는 양손으로 혜경의 뺨을 살짝 쳤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갓길을 저고리로 털어내고 바닥에 깔았다. 그런 다음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혜경을 왼팔로 어깨 밑으로 밀어 넣고 오른팔은 오금 밑을 받히고 난 뒤 들어 올렸다. 나의 몸을 웅크리며 혜경의 몸을 빼내 저고리 위에 반드시 뉘었다. 우선 목 쪽의 동맥의 맥박을 체크했다. 그러나 내가 당황해서인지 맥박이 뛰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예민하던 내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코에 검지를 펴서 호흡을 가늠했다. 호흡이 멈춘 듯했다. 사고가 난 지 금방이라 불안감이 밀려왔다. 혜경을 잃지 않으려고 침착하기 위하여 깊게 심호흡을 했다. 우선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려 군대에서 받은 교육을 상기했다. 양손을 깍지 꼈다. 혜경의 흉부에 내 손바닥 아래 부위로 30회 정도 빠르게 눌러 주었다. 혜경의 턱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뒤로 젖혀 기도를 확보했다. 혜경의 머리를 젖힌 손의 검지와 엄지로 코를 막고 그녀의 입에 2회에 걸쳐 내 숨을 불어 넣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혜경은 약하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다시 혜경이의 이름을 불러봤다.
“혜경아! 혜경아!”
역시 반응이 없었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얼굴에 땀인지 눈물인지 물기로 젖어 들고 있음을 느껴졌고 나의 두 눈도 물기에 젖은 듯 혜경의 모습이 굴절돼 보였다. 어디서 왔는지 경광등을 번쩍이며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견인차가 구급차가 오기도 전에 먼저 도달했다. 나는 혜경의 코에 검지를 펴서 계속 호흡 상태를 점검했다. 다시 사이렌이 울리고 이번엔 구급차가 건너편 도로에 도착했다. 구급차는 머뭇거리며 차들의 행로를 보면서 중앙선을 넘었다. 구급대원들이 간이침대를 꺼내 혜경을 옮겨 누이고 구급차에 실었다. 나에게 구급대원들이 혜경의 상태를 묻자 나는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나도 구급차에 올라 비닐 시트에 앉아 아버지에게 집으로 가시라고 전화했다. 구급차는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소리와 반짝이는 경광등으로 무장하고 의식을 잃은 혜경을 잠에서 깨울 곳으로 거침없이 전속력으로 향했다. 사고 난 차량 안에서 본 혜경은 안전 벨트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민하던 그녀가 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것일까? 혜경의 머리에 피가 흘러있었다. 그 피를 보니 내 피도 역류해 분출할 것 같았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미처 알지 못했다. 구급대원이 피가 굳은 머리 상처에 소독했다. 눈이 따가워 손으로 비벼도 다시 따가웠다. 목과 가슴은 굳은 듯 메여왔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구급차 문을 열고 간이침대를 내려 재빨리 응급실 안으로 달려간다. 나는 그 뒤를 따르고 의사에게 구급대원이 교통사고 환자이며 의식이 없다고 짧게 말을 건네자 의사가 지금 즉시 머리 CT를 찍으라고 오더를 내렸다. 간호사와 구급대원은 간이침대에서 병원 응급 침대로 혜경을 들어 올려 옮겼다. 그 침대는 CT 촬영실로 병원 보조원이 밀고 가고 나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촬영이 끝나고 의사들이 검토하는 동안 나는 응급실 안에서 초조하게 서 있었다. 가슴이 메여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 갑갑증이 느껴졌다. 눈이 따가 왔고 머리는 텅 빈 듯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들은 뇌에 혈액이 고여서 뇌압이 상승하여 위험하니 지금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수술이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경찰’이라는 문구가 떴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순애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동생분의 거주지를 확인했습니다. 저희도 만날 예정이지만 먼저 동생분의 주소를 알려드리죠.”
“잠깐만요.”
휴대폰의 메모지 앱을 띄웠다.
“부르시죠.”
주소를 듣고 적어가는 과정에서 묘한 긴장을 느꼈다. 우리 동네 근처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동생의 이름을 물어봤다. ‘이혜경’이란다. 내 머리 속엔 동생의 이름을 ‘경화’로만 아로새겨져 실종 이후에 불리어 진 동생의 이름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도 그 부분에 대하여 나와 같은 입장이었을까? 그런데 동생은 대담프로에서 마지막 장면에 자기의 사진을 몰라본 것일까? 아니면 못 본 걸까? 전화를 끊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혜경이의 수술이 무난히 끝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수술실 입구 위 시계는 수술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가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수술복 차림의 담당 의사가 나왔다. 나에게 묻는다.
“보호자인가요?”
“예.”
“아쉽지만 뇌에 너무 큰 충격으로 수술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수술 중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목이 조여들며 무언가가 가슴에서 성대 쪽까지 힘껏 밀어 올렸다. 그제야 굴절된 사물들이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뺨을 적셨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하여 발생했다. 내 생일이 아니었더라면 동생의 실종은 없었을 것이다. 동생의 실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리 없었고 당연히 어머니의 산소로 성묘를 갈 이유가 없었으므로 혜경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혜경과의 화양연화는 근친상간이라는 패륜으로 전락했고 촛등으로 빛나야 할 동생은 폭풍우로 돌변한 오빠로 인하여 참혹한 주검이 되었다. ‘기구’하다는 말은 동생의 삶에나 어울리는 단어였다. 유괴범을 어머니로 받들어야 했고 가난에 찌든 삶은 청춘을 지옥이라는 감옥에 가두었으니 말이다. 나는 한순간도 머리를 들 수 없었다. 혜경의 아니 동생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고 나는 곧장 비상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지옥에서 거니는 산책이 이처럼 고통스러울까?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지만 어머니가 왜 미련을 남기면서까지 알 수 없는 우주의 미아가 됐는지 깨달았다.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던 내 추측이 신빙성으로 돋아났다. 신의 권력을 찬탈해서라도 어머니와 동생을 찾으러 무한한 우주를 끝없이 찾아다니리라. 만나서 내 죄를 고백하고 온몸의 뼈 마디마디를 모두 꺾고 조아려 사죄하리라. 얼마를 올랐는지 그 병원의 옥상에 다다랐다. 옥상 문을 열자 얕은 바람이 내 바지를 붙잡는다. 훤한 낮인데도 이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창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인다. 그곳이 그녀들이 사는 은하처럼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한 없이 내려 간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 한가운데로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무엇이 다가와 내 머리를 세차게 들이박는다.
눈을 뜨니 죽비를 들고 있는 주지 스님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합장했다. 이윽고 내게 물어왔다.
“이번엔 무슨 꿈을 꾸었누?”
“탐욕 속을 헤매다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꿈이었습니다.”
“그럼 거기서 벗어나는 지혜라도 찾았나?”
“그것이 제 화두였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헛된 꿈을 꾸지 않게 되지. 잔뜩 움켜쥐고 있으니 욕심을 내려놓지 못 하는 거야.”
“……”
“이 세상에 자신이 주인인 것은 없어. 모두가 텅 빈 공이야. 모든 건 언젠간 사라져. 그것을 알면 괴로움도 없어지는 거야.”
“……”
“이놈아, 울력 조금 했다고 대낮 내내 잠만 자니 헛된 망상에 빠지는 거야. 그렇게 틈만 나면 헛된 꿈을 꾸니 수도한 지 십 년이 다 되도록 깨닫기는커녕 뜻하는 바도 모르지.”
“……”
“쯧쯧! 아집이 너무 강해.”
“……”
“종무소에 가봐. 네 놈 꿈을 누가 이끄는지 알게야.”
“예. 큰스님.”
다시 합장했다. 암자 뒤뜰에 있는 널평상을 뒤로 하고 사찰로 내려가는 주지 스님을 따랐다. 두 길로 나눠지는 길목에서 주지 스님은 요사채로 나는 종무소로 발걸음을 갈랐다. 종무소 마루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여동생이 앉아 있었다. 아직도 속세의 인연은 다함이 없었다. 대학 시절 사랑을 나눴던 연인의 죽음은 나를 세상을 등지게 하고 수행자로 만들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었나? 앞으론 잠자는 동안에도 깨어있으리라.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